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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조합원인터뷰 - 한라공조 1호 여성엔지니어 김하명 > 지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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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북 | #1 여성조합원인터뷰 - 한라공조 1호 여성엔지니어 김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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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전충북지부 작성일23-02-06 10:40 조회2,59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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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8여성의 날을 앞두고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여성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현장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지난해 봄 예쁜 철쭉이 활짝 피었을 때, 자동차용 에어컨과 열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김하명 조합원을 만났습니다. 활동하며 처음 만난 여성이어서 더 기억에 남았는데, 아주 유쾌하고 밝은 기운을 주셔서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답니다. 밝고 힘찬 기운의 김하명 조합원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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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만남, 한라공조 1호 여성엔지니어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한온시스템대전지회 정책부장 김하명

 

 

 

# 여자 가는 과는 절대 안가

 

아버지가 3대 독자였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딸만 둘 낳았거든요.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가 뻔하겠죠? 전 엄마가 할머니한테 구박 받는걸 평생 본 거예요. ‘아들도 못 낳는, 우리 집 대를 니가 끊었다.’며 할머니가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할머니한테 싫은 소리를 한껏 듣고 나면 제게 항상 넌 아들보다 더 잘난 딸로 커야 된다.’고 말하셨어요

 

그 영향인지 저도 크면서 뭐든지 남자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전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보다는 남학생들이 주로 전공하는 분야를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기계공학과를 가게 되었죠. 그런데 기계공학과라고 입학했더니 남학생들은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전 제가 뭘 해도 쉬운 길로 가긴 힘들겠구나 싶었어요. 대학생 때는 술로도 남학생들에게 지기 싫어서 악착같이 마시면서 괜찮은 척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행동이지 않았나 싶은데 아마도 어린 나이부터 거기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많이 쓴거 같아요.

 

 

# ‘남녀 평등하지만, 여자는 안 뽑아
 

제가 입사할 당시인 20년 전의 한라공조(현 한온시스템)는 완성차 업체 다음으로 공대 학생들이 선호하는 중견기업이었어요. 연봉도 높고 지역도 대전이어서 엄청 메리트가 높았죠. 그 당시 많은 기업들이 인력 투자를 목적으로 산학 장학생 제도를 운영했어요. 마침 학과 사무실에 한라공조 산학 장학생 선발 공고가 붙은거예요. 자격 조건에 맞아 신청하려고 했더니 회사의 채용 담당자가 기계전공 여학생은 안뽑는다고 했다는 거예요. 공대 기계과에는 여학생이 많지도 않았지만 솔직히 취업이 잘 안되는게 현실이었어요. 대부분의 제조업체에서는 군필자, 일 잘하고 조직 문화에 적응 잘한다고 생각하는 남학생을 선호하는게 일반적인 인식이었거든요. 그래도 회사가 대기업이고, 산학 장학생 제도니까 그런 차별은 없을거라고 생각 했는데, 현실에서 바로 제가 부딪히게 되었죠

 

그때는 화도 났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회사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여학생이 지원 할 수 없는 정확한 이유를 물었어요. 왜 여학생에게는 지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지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따지고 물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사회 통념조차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평생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그때는 저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었던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저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사장님 면접 때는 떠올리면 웃음만 나는 저의 객기로 한라공조 제1호 여성 엔지니어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 평택 공장장이 되겠습니다


입사 후에는 임원들이 기계과 전공 여직원을 처음 뽑았으니 잘 다녀야 된다고 제가 지원하지도 않은 팀으로 저를 보내겠다고 하더라고요. 최대한 활동량이 적고 인간관계도 넓지 않으며, 그 분들이 생각하기에 여자가 하기 좋은 곳 말이예요. 근데 전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어요. 기계과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악바리처럼 살았는데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팀에 앉아있기는 싫었죠. 신입사원 교육 기간 동안에는 대전공장과 평택공장을 돌아가면서 생산체험을 하는데, 평택이 대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나 주변환경이 신입사원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누구든 생산체험 하다가 평택에서 근무를 하겠다고 손을 들면 묻지도 따지고 않고 무조건 받아준다는 첩보를 입수했어요

 

전 평택공장 생산 체험때 평택 공장장님을 찾아가서 평택공장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제 의지를 당당하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 너 내 딸보다 어린데 여기 공장에서 허허허허허하시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기계공학을 전공했어도 여기 다 현장 아저씨들이 설비 만지는 곳인데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하셨어요. 여기서 또 저의 객기가 발동해서 공장장님께 저는 평택에 남아 나중에 평택 공장장이 되겠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24살 화장기도 없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저의 당돌한 대답에 공장장님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으시면서 결국 알았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평택 생산부에 배치가 됐고, 3년을 새까맣게 기름 떼 묻히면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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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닥친 핍박

 

결혼을 하고 운이 좋게도 대전으로 근무지를 변경했어요. 평택 공장장이 되겠다던 말은 정말 어릴적 객기로 끝나버려서 아쉬었지만요. 대전에서는 품질팀에서 일했어요. 한창 경기도 좋고, 회사가 잘 운영되는 시기엔 사무직들은 자신의 연봉에 대해서 신경을 안썼어요. 현장에서 기능직들이 투쟁하고 파업하면서 기본급을 올리면 사무직은 자기 할 일만 잘해도 연봉에 플러스 알파까지 따라왔거든요. 그런데 사모펀드가 들어오면서 사측이 노동조합은 투쟁하니까 기본급을 올려주고 복지를 챙겨줘야 하는 대상이고, 사무직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1, 2년 지나면서 확실히 노동조합이 있는 기능직과 노동조합이 없는 사무직에 대한 차이가 나기 시작했어요. 희망퇴직도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시켰어요. 회사 서무 여직원들을 갑자기 내일, 다음주부터 서울사무소로 출근하라고 통보했거든요. 업무의 변동이나 팀의 이동과 같은 정당한 근무지 이동이 아닌 단순히 서울사무소로 출근하라고 하면 그만 두겠지?’ 하는 속내로 통보를 한거였어요

 

그때가 2019년도였는데 사무직들은 전원 비조합원이었어요. 그 당시 비조합원인 사무직들에게 계속 탄압이 들어왔고 그때 이슈가 탁 터진거였죠. 서무 여직원의 강제 근무지 변경 통보와 사측의 기준에 따른 저성과자들의 성과급 70% 지급이 시발점이 되었어요. 이 상황을 기능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노동조합 집행부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수면 위로 올리면서 조합원은 아니지만, 회사가 해서는 안되는 행위를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사측에 대응해 줬어요. 그래서 서무 여직원 근무지 변경 건부터 철회되었어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무직들도 알게 된거죠. 노동조합이 우리 사무직이 조합원도 아닌데 잘못된 것들을 비판하고 우리 편에서 말해주는구나. 우리도 뭔가를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떨리는 손가락, URL 클릭

 

사무직들이 바로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어요. 단협상 가입이 불가한 직급도 있었고, 노동조합은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직들의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조합원인 기능직들이 파업하면 사무직들이 생산라인 투입되어 일하고, 그러다보면 기능직들과 마찰도 발생하고 말이죠. 그래서 섣불리 노동조합에 가입하는건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집행부가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측이 일방적으로 사무직을 공격하는 이슈에 대해서 사무직을 위해 나서주었고 그 다음에는 비공개 익명로 대전충북지부 개별조합원으로 사무직들이 가입할 수 있게 문을 만들어줬어요. 노동조합에서 대전충북지부에 비공개 익명 조합원 가입을 받는다고 홍보를 했고 가입 링크를 공유했어요. 누구도 내가 조합원인 것을 알 수 없고 노동조합 만드는 사전 모임이라고 하니까 한번 해봐야겠다 결심을 했죠. 핸드폰으로 가입 URL을 클릭하는데 엄청 떨렸어요. 남편도 같은 회사 연구직인데, 점심시간에 같이 커피숍에서 당신 먼저? 나 먼저? 고민하다가 둘 다 동시에 가입하고는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익명 가입이었기 때문에 몇 명이 가입했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300명은 가입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비공개였으니까 조합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잖아요그래서 그 다음 단계를 집행부가 전개해 나갔어요. ‘20201, 비공개 300명 중에 이름을 사측에 공개할 사람 나오시오.’ 처음 비공개 가입할 때는 엄청 떨렸었지만, 한번 시작해서 그런지 이름 공개하는게 뭐 어때 이런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이름을 공개하고 나면 다음 계단을 올라가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랑 남편을 포함해서 20명이 이름을 밝혔어요.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회사 노경팀에 우리도 조합원이다라는 명단을 당당히 제출했어요. 솔직히 그 명단을 내는 순간 진짜 회사 짤리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올해 400여명의 사무직 조합원들이 당당하게 조합원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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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에 여성의 색을 입히다

 

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려받기만 하는건 싫어요. 여성간부들도 남성간부들과 똑같이 육체적 활동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지부 내 낙후된 사업장에 가서 여성조합원들이 선전전을 더 해도 좋고, 노동자의 범위를 벗어나 장애인이나 아동들과 같은 사회 약자들을 위해 필요한 곳에서 봉사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사회 전반적 부분을 보듬는 활동을 통해서 금속노조도 딱딱한 모습에서 따뜻한 모습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금속노조가 90% 이상이 남자잖아요. 사실 남자들이 하는거 여성 조합원들이 더 해도 티도 안나고 그만큼 잘하기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내고 그 부분을 부각시키고 영역을 만들어나가야 하는거 같아요. 물론 남자들 하는 거만큼은 하면서요. 거기에 하나를 더 해야죠. 대한민국 아줌마들 깡 장난 아니잖아요? 투쟁 목소리도 너무 강하게만 하지 않고 조금은 온화하게 바꾸고, 색깔도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톤이 들어가 모두를 포용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이미지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금속노조에 여성의 색을 입혀나가면 좋겠어요.

 

 

#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하는건, 남편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회사도 마찬가지고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서서 나 어떻다상태를 이야기해야지만 알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나서서 꼭 이야기 하면 좋겠어요.

 

 

 

인터뷰 날짜 : 2022년 5월 6일